배수진을 친다는 것은 조선 기생 배수진씨를 때린다는 여성혐오적 표현......
이 아니라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 즉 불리한 상황에 스스로 퇴로를 막고 아군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여, 목숨 걸고 싸워서 승리를 꾀하는 전술이다.
삼국지 등 책에 보면 항상 나오는 말이 "배수진을 치다니 병법도 모르는 애송이가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지만
사실 이 전술의 부분적 차용은 전쟁사 여러 곳에서 나타남. 그리고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한신의 정형전투지.
조나라를 정벌하던 당시 3만의 병력으로 20만의 조나라군을 괴멸시킨 그 전투
한신은 고의로 배수진을 치고 조나라군이 방심하게 하여 전군이 성 밖으로 나와 총공격을 하도록 만들었음.
배수진이어서 도망도 못가고 병사들이 결사항전하는 그 짧은 찰나에
미리 숨겨둔 2000명의 별동대를 뒤로 돌려 빈 성을 점령하게 하고, 당황한 조나라군이 후퇴하려 할때 앞뒤로 협공해서 3만으로 20만을 완벽하게 박살내고 조나라를 멸망시킴
배수진 작전의 표본이고 완벽한 설계가 빛나지만 그럼 이건 "물을 등지고 결사항전 하게 하여 이기는 방법만 쓴 것은 아니잖아?"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 같음
그럼 이제 진짜 남자의 배수진을 알아보자
진나라 최후의 명장 장한이 왕리 소각 섭간 등의 대장들과 진북부군을 파견하여 조나라를 공격하던 시기였음
초나라 회왕은 귀족 송의를 대장으로 하고 항우를 부장으로 하여 구원군을 파견했는데 송의가 고의로 트롤링 하고 반역에 준하는 움직임을 보이던 차에 항우를 모욕하기까지 하니까, 항우는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전군을 장악함
항우는 경포와 포장군에게 2만의 군대를 주어 조나라를 급히 구하게 하고, 상륙 거점을 확보하라고 명령을 내림.
그리고
항우는 전군을 이끌고 강을 건넌 후,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타고온 배를 전부 부숴 침몰시키고, 솥을 깨버리게 함.'
破釜沈舟(파부침주)
그리고 각 병사들이 4일치 식량만 몸에 지니게 했는데 이 말은 즉, 우리가 4일 안에 적을 완전히 격파하지 못하면 전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함
이제 항우와 초나라군이 취해야 할 전략 목표는 두 가지임
1. 적이 완벽하게 정비해둔 보급로를 끊어서 적도 빠르게 승부를 내게 만들어야 함
우리가 4일치 식량만 가지고 왔는데 적이 사마의 마냥 진을 치고 눌러 앉아서 지키기만 하면 다 굶어 죽게 됨. 따라서 적도 전면적 회전을 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었던 것
2. 우리보다 전력이 우세한 적을 한 싸움으로 개박살 내야 함
당시 여러 제후국에서 구원병을 보냈지만 항우가 도착하고 싸우던 시점 까지도 아무도 나서서 싸울 생각도 없이 진채 안에 숨어만 있었음. 즉 본인들이 판단할 때 초나라군 전력 역시 진나라에는 안 된다고 봤다는 것.
그걸 뒤집고 이겨야 했던 것
일단 항우는 부장인 경포와 용저를 보내 적의 보급로를 끊도록 하였는데 이들이 잘 싸우니까 왕리가 이끈 대부대가 경포를 막으러 왔음
이때를 기다린 항우가 전 병력을 이끌고 직접 들이쳐서 진나라군을 완전히 박살냈고 진의 보급로는 완전히 끊어지게 됨
그리고
어쩔수 없이 왕리가 이끈 진나라군이 전군을 들어 초나라군을 공격하게 되자.... 초나라와 진나라는 벌판에서 전 병력을 동원한 대회전을 펼치게 되는데
사서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음
"楚戰士無不一以當十, 楚兵呼聲動天, 諸侯軍無不人人惴恐."
"초나라 전사들 중 혼자 열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자가 없었고, 초나라군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시켰다. 이를 지켜보던 제후군들조차 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항우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장 자신있어서는 벌판 대회전을 벌이자
초나라군은 진군을 완전히 붕괴시켰고
진의 북부군 사령관 왕리는 포로로 잡히고 부장인 소각은 전사했으며 섭간은 패배가 확실해지자 패전의 죄가 가족들에게 연좌되지 않도록 불에 몸을 던져 분신자살했다.
전투가 끝나고 항우는 구경만 하던 제후군을 전부 불러 모았고
항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본 제후군의 지휘관들은
"入轅門, 無不膝行而前, 莫敢仰視."
"군문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오지 않는 자가 없었고, 감히 고개를 들어 항우를 올려다보지 못했다."